
솔직히 저는 동파육을 "그냥 흥건한 기름 고기 덩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TV나 Youtube에서 젓가락만 대면 마치 푸딩처럼 탱탱하게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지만, 굳이 돈 주고 찾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이상하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뒤 저녁 무렵에 우연히 들어간 중국요리 전문점에서 그 동파육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쳤고, 곧장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것들과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담았습니다.
천 년을 넘은 음식, 동파육의 배경
동파육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소식(蘇軾, 1037~1101)이 개발한 요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號)가 동파(東坡)였던 그가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면서 '동파육(東坡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온 음식이라는 사실이, 막상 한 점을 입에 넣었을 때 묘하게 실감이 났습니다.
항저우식 동파육의 정통 조리 방식은 크게 4단계로 구분됩니다. 데치기(전처리), 지지기(표면 마이야르 반응 유도), 졸이기(브레이징), 찌기(스티밍)입니다. 여기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란 고기 표면의 단백질과 당이 열에 의해 반응하여 특유의 갈색과 풍미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고기를 구울 때 표면이 노릇해지면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 바로 그 원리입니다.
이 음식이 특별한 이유는 재료의 희귀성에도 있습니다. 정통 동파육의 핵심 재료 중 하나인 소흥주(紹興酒)는 중국 전통 발효주로, 국내에서 구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제가 직접 서서울 일대 주류 판매점에 수십 통 전화를 돌렸는데 절반 이상은 소흥주 자체를 몰랐고,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대림 지역에서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몇 주 뒤에야 목동의 한 주류점에서 2만 원에 겨우 한 병을 구했습니다. 그 한 병을 손에 넣는 순간의 뿌듯함은, 요리하기도 전에 이미 이 음식에 정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핵심 재료가 노추(老抽)입니다. 노추란 일반 간장보다 농도가 수 배 이상 짙은 중국식 진간장으로, 색을 내는 데 주로 쓰입니다. 먹물을 붓는 듯한 색깔이라고 하면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국물 색이 순식간에 바뀝니다. 온라인에서 2,000원대에 구매 가능합니다.
직접 만들어보니 달랐던 것들
레시피를 보면 단순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해보니, 이건 기술이 아니라 인내의 문제였습니다.
첫 단계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삼겹살 껍질의 털을 칼로 긁어내고 토치로 그슬리는 작업을 하는데, 냄새가 집 안 전체에 퍼졌습니다. 아이들이 방문 앞에서 "아빠 또 이상한 거 해?" 하고 물어봤습니다. 전처리 단계에서 대파와 팔각(八角)을 넣고 10분만 데치는 이유는 단순히 냄새 제거만이 아닙니다. 팔각이란 붓꽃과 식물의 열매를 건조한 향신료로, 아니스 계열의 독특한 향을 내며 중국 요리에서 잡내 제거와 풍미 부여에 폭넓게 쓰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기다림이었습니다. 졸이기 단계에서만 약불로 두 시간이 필요합니다. 브레이징(Braising)이란 소량의 액체와 함께 뚜껑을 덮고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가열하는 조리법으로, 결합 조직(콜라겐)이 천천히 젤라틴으로 전환되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끈적한 식감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콜라겐(Collagen)이란 근육을 연결하는 섬유 단백질로, 오랜 시간 열을 가하면 젤라틴으로 변하여 고기를 윤기 있고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 변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절대 서두를 수 없습니다. 센 불로 끓이면 겉은 익어도 이 변환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찌기 단계에서 제 치명적인 실수도 있었습니다. 찜기 크기를 고기 크기에 맞추지 않아 따로 나눠 쪄야 했고, 전체 조리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고기를 요리용 실로 묶는 이유도 직접 해보고서야 이해했습니다. 오래 브레이징하면 지방층이 녹으면서 살코기 층이 분리될 수 있는데, 실로 묶어두면 플레이팅 시 모양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동파육 조리 시 필요한 핵심 재료와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흥주: 발효 향을 더해 잡내를 제거하고, 고기에 깊은 풍미를 입히는 핵심 재료
- 노추: 진한 색깔을 내는 중국식 진간장. 색감 없이는 동파육 특유의 검붉은 비주얼이 나오지 않음
- 팔각, 우 샹 펀(五香粉): 복합 향신료로 이국적인 향을 형성. 우 샹 펀이란 팔각, 정향, 계피 등 다섯 가지 향신료를 갈아 섞은 중국식 혼합 향신료를 말함
- 흑설탕: 캐러멜화를 통해 소스의 단맛과 색감을 동시에 보완
맛에 대한 솔직한 평가
처음 한 점을 입에 넣었을 때, 젓가락을 힘도 안 줬는데 그냥 찢어졌습니다. 지방층은 느끼하다기보다 묘하게 달았고, 연골은 투명해져서 고기처럼 씹혔습니다. 이건 수비드(Sous-vide) 방식으로도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수비드란 진공 포장한 식재료를 낮은 온도의 물에서 장시간 가열하는 조리법인데, 이 방식은 연골 조직의 식감을 충분히 전환시키지 못해 씹는 느낌이 좋지 않아 집니다. 장시간 브레이징과 스티밍을 병행하는 동파육 방식만이 이 독특한 식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의견이 갈립니다. 동파육을 "인생 음식"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두세 점쯤 먹고 나면 입안 전체가 기름으로 코팅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500g 정도 먹었을 때 목구멍 전체가 기름막으로 감싸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게 동파육만의 특성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돼지 삼겹살의 지방 함량은 부위와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0~40% 수준에 달합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 구이로 조리할 때는 지방이 상당량 빠져나가지만, 브레이징은 지방을 그대로 품은 채 부드럽게 만드는 방식이라 기름짐이 더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동파육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시각도 분명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한계가 아니라 설계된 조건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중국 음식 문화 연구에 따르면 이런 고지방 요리는 전통적으로 짜사이, 청경채와 같은 발효 채소나 신선 채소와 함께 먹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출처: 중국농업부 음식문화 자료). 제 경험상 김치 한 점이 동파육의 기름기를 끊어주는 순간, 음식이 다시 살아납니다. 고수와 함께라면 비계층이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파육은 곁들임 없이 홀로 완성되는 음식이 아닙니다.
제 아내는 맛있긴 한데 많이는 못 먹겠다고 했고, 아이들은 살코기만 쏙 빼먹었습니다. 남은 건 늘 그랬듯 제가 처리해야 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가 않았습니다. 늦은 밤 혼자 술 한잔에 남은 한 점을 먹는데 "뭐랄까"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동파육은 분명 한 번쯤 꼭 만들어봐야 할 요리가 맞습니다. 다만 처음 만들 때는 찜기의 크기에 맞게 고기를 준비하고, 소흥주는 대형 주류 전문점을 직접 방문해서 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김치나 단무지를 준비하여 같이 곁들일 수 있는 사이드 음식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그게 없이 먹는다면 세 점, 네 점이 한계입니다. 이런저런 과정 속에서 살아남은 음식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먹는 방법까지 이미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