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컨으로 잼을 만든다는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속으로 '이건 좀 아닌데.. 따라 했다가 실패하면 어쩌지'라고 잠시 고민했습니다. 짠 고기와 달콤한 잼이 한 그릇에 있다는 게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이 갔습니다. 머릿속에서 잘 안 그려졌다는 얘기처럼 궁금증 너무 급증했고, 정말 해보지 않으면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은 그런 레시피였습니다. 결국 코스트코에서 베이컨 두 팩을 집어 들었고, 그날 오후 세 시간이나 넘는 요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캐러멜라이징, 그 지루한 마법
요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 45분은 그냥 베이컨만 볶는 시간이었습니다. 코스트코 베이컨 기준으로 두 팩, 약 900g 가까이 되는 양을 약불에 올리고 계속 저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베이컨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이 점점 많이 나오고, 소리가 잦아들면서 뭔가 묵직한 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팬 바닥에 눌어붙기 시작하는 갈색 자국이 생깁니다. 이것을 퐁드(fond)라고 합니다. 퐁드란 고기나 채소를 볶을 때 팬 바닥에 눌어붙는 갈색 잔여물로,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물입니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란 고온에서 단백질과 당이 만나 갈변하면서 수백 가지 풍미 성분이 생성되는 화학반응입니다. 쉽게 말해 고기를 구울 때 나는 그 구수하고 복잡한 향의 원천이 바로 이 반응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퐁드가 나중에 양파와 소스를 만났을 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닦아내면 안 됩니다.
베이컨을 체에 걸러 따로 빼놓은 뒤, 같은 팬에 버터와 마늘 5쪽, 그리고 양파 4개를 넣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싸움입니다. 양파를 캐러멜라이징(caramelizing)하는 과정인데, 캐러멜라이징이란 당분이 열을 받아 분해되며 갈변하고 단맛과 복잡한 향미가 강해지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중불 기준으로 약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겁니다. 계속 저어줘야 하기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븐처럼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옆에서 계속 붙어 있어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계속 저었는데, 중간에 몇 번이나 불을 끄고 싶었습니다.
마이야르가 만든 소스, 밸런스가 핵심이었다
양파가 어느 정도 갈색빛을 띠기 시작했을 때, 소스를 넣었습니다. 솔직히 완전히 캐러멜라이징이 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일단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소스 구성은 단맛, 신맛, 알코올로 나뉩니다.
- 단맛: 흑설탕 4큰술, 메이플 시럽 4큰술. 백설탕은 향이 단조롭기 때문에 비추합니다. 흑설탕과 메이플 시럽은 향의 결이 달라서 둘 다 필요합니다.
- 신맛: 애플 사이다 식초 4큰술, 셰리 식초 4큰술. 애플 사이다 식초(apple cider vinegar)란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로, 일반 사과 식초와는 풍미가 다릅니다. 셰리 식초는 스페인의 셰리 와인을 숙성 발효한 식초로, 홈플러스에서 5천 원대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 알코올: 버번위스키 8큰술. 버번(bourbon)이란 미국 켄터키주 원산의 옥수수 함량 51% 이상 증류주로, 오크통 숙성에서 나오는 바닐라와 캐러멜 향이 특징입니다.
소스를 넣는 순간 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그때부터 집중력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거 잘하면 진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스를 넣고 나서도 약 30분을 더 졸여야 합니다. 수분을 날리면서 농도를 잡는 과정입니다. 식품과학적으로 보면 이 단계에서 글루탐산(glutamate) 성분이 농축됩니다. 글루탐산이란 식품에서 감칠맛(umami)을 내는 아미노산으로, 가열과 숙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증가합니다. 베이컨 자체가 이미 글루탐산이 풍부한 식재료인데, 여기에 양파의 캐러멜라이징, 버번의 향까지 더해지면서 감칠맛 층이 두터워지는 원리입니다.
밸런스, 그 한 숟가락의 무게
마지막으로 베이컨을 다시 넣고, 후추 1 티스푼, 카이엔 페퍼(cayenne pepper) 1 티스푼, 타임 잎 몇 장을 더했습니다. 카이엔 페퍼란 고추 과 향신료로, 단순한 매운맛보다는 후끈하고 깊은 열감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처음에는 매운 향신료가 왜 필요한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단맛과 신맛만 있으면 자칫 느끼하거나 단조로울 수 있는데, 카이엔 페퍼가 그 사이를 끊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완성된 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처음에는 달콤함이 오고, 바로 짠맛이 따라오고, 그 뒤에 산미가 살짝 치고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기의 묵직한 감칠맛이 남았습니다. 여러 맛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서로 싸우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각자 역할을 알고 있는 것처럼요.
실제로 미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감지하는 기본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외에 지방 맛(oleogustus)까지 포함해 논의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화학회(ACS)). 이 베이컨 잼은 그중 적어도 다섯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밸런스가 이 정도로 정교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솔직한 생각을 덧붙이자면, 이 요리는 약간의 과잉이 있습니다. 맛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모든 요소를 다 채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숨 쉴 틈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그 완성도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요리 후 손님 10명 이상에게 내어봤다는 사례처럼, 제 경우에도 지인에게 먹였을 때 반응이 좋았습니다. 따뜻한 요리도 아니고 거창한 메인도 아닌데 기억에 남는다는 건 분명 이례적인 일입니다(출처: 미국농무부(USDA) 식품 성분 데이터베이스).
누군가가 베이컨 잼을 다시 만들라고 하면 잠깐은 망설일 것 같습니다.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또 투자할 자신도 없고 설사 실패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척이나 귀인이 집에 온다면 한 번쯤 꺼내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앞으로 나올 표정이 궁금해서입니다. 이 요리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가가 더 오래 남는 케이스였습니다. 요리가 끝나고 나면 가장 기억에 남을 때가 있는데, 베이컨 잼이 딱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아무튼 이 요리는 한 번쯤은 꼭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