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수비드로 스테이크 덮밥을 만들면 재료비만 2만 원이 넘습니다. 밖에서 사 먹으면 18,000원인데, 저도 처음엔 '집에서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직접 해보고 나서야 그 자신감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스테이크 덮밥이 화제가 된 이유
올해 초부터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스테이크 덮밥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윤기 흐르는 고기가 밥 위로 넘쳐흐르고, 반숙 노른자가 천천히 터지는 장면.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는 비주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화면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호주산 소 안심 280g을 사용한 덮밥을 18,000원에 팔 수 있는 걸까요? 코스트코 기준으로 소 안심 100g이 6,890원이니, 280g이면 재료비만 약 19,292원입니다. 식당 판매가보다 재료비가 더 비쌉니다.
이 비밀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 냉동육 사용: 국내에서 가장 저렴한 옵션은 호주산 냉동 안심으로, 코스트코 냉장육의 약 1/4 수준 가격입니다.
- 작은 그릇 트릭: 햇반 한 개(210g) 위에 고기를 조금 더 올린 크기입니다. 화면에서 산처럼 보이는 건 그릇 자체가 작기 때문입니다.
- 원가율 계산: 냉동육을 대량 박스(약 50만 원 단위)로 매입하면 개당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비주얼이 일상적인 한 끼가 맞냐는 의문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비주얼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음식 사진이라는 게 원래 가장 좋은 순간을 담는 것이니까요. 다만 그 뒤에 어떤 계산이 숨어 있는지는 알고 먹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수비드와 마이야르 반응, 실제로 해보니
저는 안심 대신 채끝살을 사용했습니다. 정육점 가격표를 보면서 잠깐 멈칫했지만, '이왕 먹는 거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단 싸겠지'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전형적인 소비자 심리였습니다.
수비드(Sous Vide)란 식재료를 진공 포장한 뒤 일정 온도의 물에서 장시간 익히는 저온 조리법입니다. 단백질이 과도하게 수축하지 않아 육즙이 그대로 보존되고,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실패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저도 57℃에서 2시간 동안 익혔습니다. 진공 포장기가 없어서 지퍼락 백을 물에 넣어 수압으로 공기를 빼는 방식을 썼는데, 실제로 진공 포장에 가깝게 작동했습니다.
문제는 수비드가 끝난 직후의 비주얼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쌈고기 색깔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회색빛 고기 덩어리는 아무리 봐도 식욕을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핵심입니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고온에서 단백질과 당이 결합해 갈색으로 변하면서 독특한 풍미 화합물이 생성되는 현상입니다. 흔히 고기를 구울 때 겉면이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이 바로 이 반응입니다. 저는 직화 토치가 없어서 팬을 강하게 달궈 시어링(Searing)을 했는데, 색이 변하는 순간 '그렇지, 이거지'라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냄새도 살아나고 기대감도 다시 올라왔습니다.
시어링(Searing)이란 고온의 팬이나 직화에 짧게 접촉시켜 겉면에 마이야르 반응을 유도하는 기술입니다. 수비드로 속을 완벽하게 익힌 뒤 시어링으로 겉면에 색과 향을 입히는 방식은, 저온 조리와 고온 조리의 장점을 동시에 취하는 조합입니다.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저온 장시간 조리 방식은 고온 단시간 조리에 비해 육류의 콜라겐 분해율이 높아 식감이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집밥 가성비, 직접 계산해 보니
밥을 담고 고기를 올리는 순간, 예상보다 고기 양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상처럼 산처럼 쌓으려고 했지만, 제가 만든 건 그냥 고기가 넉넉한 덮밥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저는 원래 질보다 양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릇이 작았다면 산처럼 쌓였겠지만, 설거지 늘어나는 게 싫어서 큰 그릇을 그대로 썼습니다.
맛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한 점 집어 먹는 순간, 부드러움이 먼저 왔고 그 뒤를 간이 따라왔습니다.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습니다. 노른자를 터뜨리면 단짠 간장 양파 소스와 섞이면서 맛이 한 단계 더 올라갔습니다. 제 경험상 이 조합은 정말 실패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성비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채끝살 가격에 밥, 양파, 간장 소스 재료, 달걀까지 더하면 두 그릇 기준으로 2만 원을 훌쩍 넘깁니다. 외식하면 한 그릇에 18,000원인데, 집에서 두 그릇 만드는 데 비용이 비슷하거나 더 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 가구의 월평균 외식비는 약 15만 원 수준으로, 집밥이 항상 저렴하다는 인식은 실제 지출 패턴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 덮밥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와 비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채끝살 또는 안심(약 700g): 코스트코 기준 냉장육 약 48,000원 내외
- 달걀(반숙용 2개): 약 600~800원
- 양파, 간장, 미림, 사케, 설탕 등 소스 재료: 약 1,000~2,000원
- 밥(2인분): 약 400~600원
합계 약 50,000~52,000원, 두 그릇 기준 한 그릇당 약 25,000원 이상입니다. 외식 18,000원과 비교하면 집에서 만드는 것이 오히려 비쌉니다.
집에서 직접 해보고 나서 밖에서 먹는 한 그릇의 가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맛은 분명히 만족스러웠고, 수비드와 시어링을 통해 만들어낸 핑크빛 단면과 부드러운 식감은 집에서도 충분히 재현 가능합니다. 다만 그걸 매번 집에서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면, 저는 솔직히 '꼭 그럴 필요는 없다'라고 봅니다. 특별한 날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요리인 건 분명하지만, 일상적인 가성비 식사로 분류하기에는 재료비 부담이 따릅니다. 처음 도전해보고 싶다면 냉장 부챗살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