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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본 스테이크 (수비드, 팬프라잉, 두께비교)

by stylesens0608 2026. 4. 17.

티본 스테이크

 

정성껏 구울수록 더 맛있어야 한다는 게 스테이크의 상식 아닌가요?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5cm 두께의 티본스테이크를 직접 두 방식으로 구워보고 나서, 그 믿음이 꽤 흔들렸습니다. 손이 더 많이 간다고 꼭 결과가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5cm 티본, 굽기 전부터 이미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이 두께를 집에서 도전해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5cm짜리 티본을 보는 순간 "이건 고기가 아니라 이벤트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결국 질러버렸습니다.

포크 앤 나이프에서 1kg에 51,500원짜리 옵션을 골라 두 덩이를 준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테이크는 최소 3cm 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된 식감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그것도 훌쩍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고기를 꺼내는 순간 솔직히 웃음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걸 내가 굽는다고?'라는 생각과 동시에 괜히 뿌듯함도 따라왔습니다.

시즈닝 구성은 단순했습니다. 소금, 후추, 드라이 로즈 마리, 마늘 가루, 양파 가루. 평소에는 대충 뿌리던 것들인데, 이날만큼은 두께를 감안해서 평소보다 훨씬 넉넉하게 뿌렸습니다. 시즈닝 하나에도 괜히 진지해지는 기분, 이 고기가 주는 분위기가 따로 있었습니다.

두께가 두꺼울수록 겉과 속의 온도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조리 방식 선택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이 점에서 저는 두 가지 방식을 동시에 비교해 보기로 했습니다. 수비드(Sous Vide) 방식과 팬프라잉(Pan Frying) 방식입니다.

두 방식의 핵심 차이를 먼저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비드: 진공 포장 후 정밀 온도의 수조에서 장시간 저온 가열. 내부까지 균일하게 익히는 방식
  • 팬프라잉: 팬 위에서 직접 열을 가해 굽는 전통 방식. 마이야르 반응으로 겉면 풍미를 끌어올리는 게 핵심
  • 목표 내부 온도: 두 방식 모두 53°C. 이 온도가 미디엄 레어와 미디엄 사이의 기준점

수비드 vs 팬프라잉, 제가 직접 확인한 차이

수비드(Sous Vide)란 식재료를 밀봉한 뒤 정밀하게 제어된 수온에서 오랜 시간 익히는 저온 조리 방식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온도의 정밀함'인데, 내부 전체가 목표 온도에 도달할 때까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과조리나 불균일 익힘이 사실상 없습니다.

저는 53°C 수조에서 두 시간 반을 익혔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할 일이 없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게 진짜 장점이었습니다. 고기 걱정 없이 다른 준비를 다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팬프라잉 쪽은 완전히 다른 집중력이 필요했습니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란 고온에서 단백질과 당이 반응해 갈색 빛과 복합적인 풍미가 생성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반응이 일어나는 온도 구간과 내부 온도를 동시에 맞춰야 하는데, 5cm 두께에서는 이게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습니다.

제가 직접 재어보니 팬 위에 올린 지 10분이 지나도 내부 온도는 9°C였습니다. 완전히 차가운 상태. 그런데 겉면은 이미 색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불균형이 두꺼운 고기 조리의 핵심 어려움입니다. 최약불로 2분마다 뒤집어가며 39분을 소요한 끝에 겨우 53°C에 도달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불을 높였다면 겉은 이미 탔을 겁니다.

실제로 조리하면서 확인한 수치입니다. 온도계를 중심부에 직접 꽂으며 측정했기 때문에 체감이 훨씬 정확했습니다. 수비드는 레스팅 없이 시어링만 짧게 추가해도 팬프라잉과 내부 온도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맞춰졌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꽤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두 번 먹어보고 내린 솔직한 결론

썰어봤을 때 차이가 가장 극명했습니다. 팬프라잉 쪽은 회색에서 분홍빛으로 이어지는 그라데 이션이 확실히 존재했습니다. 층별로 다른 식감, 겉은 크러스트, 안쪽으로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구조였습니다. 이것 자체가 매력이기도 합니다.

수비드는 달랐습니다. 자른 단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동일한 분홍빛이었습니다. 특히 안심 부위는 칼이 그냥 미끄러지듯 들어갔고, 씹는다기보다 녹는다는 표현이 어울렸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팬에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도 거기서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부 질감만 놓고 보면 수비드 쪽이 확실히 더 안정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비드는 '편의성' 위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조리 중 손을 뗄 수 있다는 건 맞지만, 장비 준비, 온도 설정, 이중 포장 등의 과정은 처음 하는 분에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걸 편하다고 느끼려면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한편, 식품 조리과학 연구에 따르면 저온장시간 조리 방식은 단백질 변성을 최소화하면서 수분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육즙 유지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과학회). 그리고 농촌진흥청의 한우 조리 특성 연구에서도 두꺼운 부위일수록 내부 온도 관리가 최종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결국 제가 내린 판단은 '방식보다 두께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4cm 이상의 스테이크는 조리법과 관계없이 경험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 입에 느껴지는 밀도, 흘러나오는 육즙, 씹을 때의 무게감이 얇은 고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걸 매번 하기엔 가격도, 시간도, 장비도 부담입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 얇은 고기를 대충 구워 먹습니다. 그리고 그게 또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날엔 5cm, 평범한 날엔 그냥 팬 위에. 그 둘 사이를 계속 오가게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HBYER2sUWk